대구대학교 초빙교수 신동필(행정학박사, 전.경상북도선거관리위원회상임위원) 기고문
▲ 대구대학교 초빙교수 신동필
필자는 지난 2012년 말을 끝으로 30년 넘는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 생활을 마감했다. 1982년 3월 신규로 발령받은 이후 일선 선거현장에서 수많은 선거를 관리했다. 우리나라 선거문화가 바뀌고 있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아 온 것이다. 선거를 관리하는 과정에 말 못할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많았다. 지나고 보니 그 당시 시대 상황에는 그렇게 밖에 될 수 없겠다고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나라 선거문화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돌이켜 기억을 더듬어 본다. 우리나라가 급격하게 민주화된 계기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었다. 18년 만에 되찾은 1987년 12월 대통령직선은 유세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돌팔매가 난무하는 폭력과 혼란 속에 치뤄졌다.(후보자가 시위진압용 투명방패로 연단을 에워싸고 연설을 할 정도였다.)
그 이듬해인 1988년 국회의원선거 역시 과열로 선관위사무실 점거농성과 개표상 위에 들어 눕는 행위도 허다했다. 과열된 분위기와 불신으로 시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이목을 집중시켜 득표와 연결하려는 정당의 당시 전략이다. 요즘 같으면 잘 먹혀들어가지 않겠지만, 짧은 선거 기간에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진실 여부가 확인되기 전 투표일이 지나기 때문에 상습적으로 써먹던 수법이다.
폭력과 혼란도 문제지만 금품선거는 어떠했던가? 그릇세트를 돌리거나 세대별로 표를 분석해 지지층과 반대층을 분류해 선거일 하루 전 현금 봉투도 돌렸다. 그래서 선거일 전날 밤에 상대편 후보 돈 봉투 살포를 잡으려 매복해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혼탁했던 선거는 1989년 4월 동해시 국회의원 재선거를 계기로 전환점이 되기 시작했다. 당시 모든 정당이 사활을 걸고 선거에 집중, 혼탁 불법선거가 자행됨에 따라 선관위는 선거 사상 최초로 전 후보자를 고발하고 직원을 대거 현장단속에 투입했다. 그 후 매년 4월, 10월에 실시하는 재보궐선거 때마다 전국의 선관위 직원이 현장에 파견 투입돼 단속활동을 전개함에 따라 불법선거를 많이 저지하게 됐다.
게다가 1995년 3월 16일 제정된 통합선거법은 깨끗한 선거문화를 다질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를 마련해 줬다.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는 후보자는 당선무효 및 5년 동안 피선거권의 제한을 받게 됐다. 아울러 선거범죄신고 포상금 제도와 받은 금품 액수의 50배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를 시행함에 따라 금품 타락선거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지구당을 폐지하고, 후보자 합동 연설회 폐지, 정치인 축조의금을 금지하는 등 돈이 많이 들어가는 기존 체제도 개선했다.
그 후 2006년 5월 31일 지방선거부터는 고질적인 비방 흑색선전을 지양하고 혈연 지연에 의한 선거 본질 훼손을 극복하기 위해 매니페스토 정책선거가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통합선거법이 제정되기 전 출장 중 우연히 김포공항에서 만난 코미디언 故정주일 의원의 “지구당유지비 등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정치 못 하겠어요.”라고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하던 그 말이 떠오른다. 지금 같은 선거제도가 빨리 도입됐더라면 정치도 더 오래 했거나 스트레스를 덜 받아 일찍 고인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선거 정당제도는 짧은 기간 안에 발전해 왔지만, 정치인들은 그 제도에 맞게 얼마나 변화해 왔던가? 수십 년 동안 관찰해온 필자의 눈에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아무리 제도가 잘돼 있더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정치인과 국민이 좋은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지금은 정치인과 선출직 공무원(선량)이 바뀌어야 할 차례다.
먼저, 선량들은 오로지 민생에만 몸과 마음을 매진해야 한다. 우리 정치는 너무 이데올로기적이며 편 가르기가 심하다. 이데올로기 전쟁은 구·소련의 붕괴로 끝이 났다. 현재 세계는 이념보다 실리적으로 국민이 잘사는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제3의 길이다. 진보나 보수를 초월해 국민이 잘살 수 있는 중간의 길을 찾자는 것이다. 정치란 오로지 민생과 국민 행복만 추구하면 된다. 국민은 이념에 관심 없는데도 정치인들만 과거 이데올로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아쉬운 현실이다.
두번째로, 선량들은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내가 왜 선출직이 됐으며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누구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가 짚어 봐야 한다. 정치인들은 재선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맡은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일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저 국민이 뽑아 준 일꾼이라는 마음을 다시 먹기 바란다.
또한, 글로벌 시각과 기업가적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내 돈으로 투자한 장사판이라고 생각하고 손해 가지 않기 위해 매사에 한 땀 한 땀 최선을 다하는 기업가적 마인드를 가지자.
얼마 전 고향의 농산물 판매 행사를 한다기에 가보고는 적지 않은 실망을 했다. 교통 좋고 유동인구 많은 곳에서 하면 매출도 오를 걸 변두리 운동장에서 정치인들을 모아 이벤트 행사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벤트 행사 예산이 과연 내 돈이면 이렇게 낭비할 수 있을까? 부도 매장정리 하듯이 골목마다 벽보 붙이는 편이 행사홍보에 더 유리할 것이 아닌가? 등 답답한 생각을 안고 돌아왔다.
선량만 변해주면 우리나라의 정치는 분명 일류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유권자심판의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국민 또한 혈연, 학연, 지연에 맘 약해지지 말고 후보자의 소명의식, 전문성, 열정을 꼼꼼히 챙겨야 할 때이다. 그렇게 돼야 하고 분명 그렇게 할 것으로 우리 국민의 저력을 믿는다.
201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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